제목 :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서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지은이 : 빅터 프랭그
옮긴이 : 이시형
초판 1쇄 발행 : 2005. 05. 10
개정 보급판 1쇄 발행 : 2020. 05. 30
발행처 : 청아출판사
지은이 빅터브랭크 :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은 정신 요법 제 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죽음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인간 존엄성의 의대함을 몸소 체험하며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며 이 책을 출판 하였습니다.
옮긴이 이시형 :
1934년 출생 경북대학교 의학학사, 예일대학교 대학원 신경정신과학 박사, 병원없는 사회를 꿈꾸는 국민의사, 강북삼성병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한국정신의학연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 2009년 세로토닌 문화원 설립. 6.25 전쟁 직후 대구에서 대구공항 하우스보이로 일하며 전쟁이 휩쓸고 간 거리, 추위와 굶주림에 고픈 배를 움켜잡으며 힘들게 살고 있을때 가판대에 놓여 있던 헌책 한권 <<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읽고 전율과 감동으로 몸서리 치며 정신이 번쩍들고 '거기보단 여기가 낫지 않은가 ' 생각하며 힘을 얻고 벌떡 일어났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시련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죽음을 앞두고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까요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이 책에서는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한부류는 자신 또는 친구를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가스실로 보내고
같은 죄수로 들어왔음에도 나치의 앞잡이가 되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다른사람을 짖밟고 죽음으로 밀어넣는 돼지와 같은 사람
또 한 부류는 죽음 앞에서도 의미를 찾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자신을 희생하는
성자와 같은 사람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들어 사람을 가스실로 보내는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을 외울 수 있는 존재라고
여러분이 처한 지금의 삶은 어떠합니까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에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까
죽음의 절망이 가득찬 수용소 안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삶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입니다.
인간의 모든 비극적인 요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삶에 대해 네(yes) 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
이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앞날의 희망과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까
인생이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고 축 쳐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나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삶의 방향을 찾아
인생의 등불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수용소 안에서의 삶
구타와 고문과 죽음이 기다리는 삶 언제든지 가스실로 갈 수 있는 운명
작업반장이 수없이 주먹을 휘드르고 때리는 삶
지금 당장 죽을 수 도 있는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삶
치열한 생존경쟁속에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자기목숨을 구하려고 잔혹한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을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 팔아넘깁니다.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오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메마른 정서, 무감각 ,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본능만이 있습니다.
자자도 동료가 어려움에 처해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신은 빵조각을 먹는 일에 신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소년의 발가락이 동상이 걸려 의사가 시커멓게 썩은 살을 끄집어 내는 광경을 보면서도
혐오감,공포,동정심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한사람이 숨을 거두자 나머지 사람들은 그 시신곁으로 가서 먹다남긴 지저분한 감자를 낚아채 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좋게 보이면 신발이나 외투 심지어 구두끈 까지 가져갑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만 집중 할 뿐 그 목적에 도움되지 않는 일에는 무관심하게 됩니다.
이런 삶이 강제수용소에서의 대부분의 삶이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삶 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에만 충실한 체
희망을 찾지 못하는 일반적인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소수이지만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도 희망을 찾고 그 희망을 밝히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수용소 안에서도 유머가 있고 예술이 있고 종교가 있고 행복이 있었습니다
막사안에서 즉석으로 카바레 비슷한 것이 만들어 질 때 가 있었습니다. 잠깐 막사안을 깨끗이 치우고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촌극을 하는데 그중에는 수용소 현실을 풍자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잠깐이라도 현실을 잊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실제로 현실을 잊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아닌 다른 수용소로 배치 되었을 때 그곳에는 가스실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밖에서 꽁꽁언체 비를 맞고 떨고 있어도 행복하였습니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가 있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바닥에 앉아 있는데 동료한사람이 들어와 막사의 점호장이
가서 해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해서 밖에 나갔는데 해지는 석양을 보며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감탄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수용서에서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절망적인 수용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전파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 온지 이틀도 안된 시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있을 때
자기구역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엄격한 규칙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막사로 숨어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 겁내지 말게 가스실로 가는 선별을 두려워하지도 말게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남은 빵을 포기하더라도 유리조각으로라도 면도를 하게 더 젊게 보이고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
가스실에 갈 일은 없을 걸세"
하며 익살스러우면서도 저돌적인 말투로 정보를 주며 격려하고 사라졌습니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수용소에서 하루를 꼬박 굶어야 하는 절망스러운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급기야 불까지 나가버려 깜깜해져 버린 막사안은 어둡고 음침한 기운가운데 기분이 완전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때 막사의 고참 관리인은 희망을 잃게 되면 죽게 된다는 말을 하며 바닥까지 내려간 절망의 마음가운데 포기치 않고 끝까지 살아가야할 희망의 메세지를 던지게 하며 격려하였습니다.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자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의사인 저자도 병든사람을 요양소로 호송할 때 자신의 이름도 요양소로 이동되는 명단에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요양소란 정말 요양소인지 아님 가스실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양소에 간다는 것은 가스실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와 잘 알고 있던 주치의가 저자의 이름이 리스트에서 있는 것을 보고 리스트에서 빼토록 했으니 병든사람옆에 있지 말고 당직실로 가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자는 병든 사람을 떠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든사람과 끝까지 같이 있기로 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막사의 친한 친구는 슬픈표정으로 정말 가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렇다네 나는 갈 거야" 그리고 친구에게 유언적인 말을 합니다. "만약 자네가 나의 부인을 만나게 된다면 비록 그녀와의 짧은 결혼 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꼭 전해주게" 이말을 하고 환자와 함께 요양원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요양원은 가스실이 아닌 진짜 요양원이었습니다.
전선의 포격소리가 수용소까지 가까이 요고 독일의 패배가 얼마 남지 않게 되자 수용소의 경계도 느슨해 졌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탈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와 다른 동료들도 탈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탈출하려고 하자 옆에 있던 환자 한명이 절망적인 눈빛으로 "선생님도 나갈 건가요?" 물어보왔습니다. 그러자 저자는 부인하였지만 그의 슬픈 눈초리를 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막사 밖으로 나가 같이 탈출하기로 한 친구에게 나는 탈출 할 수 없다고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남기로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수용소에 남아있게 됬었고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자는 환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안위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희생을 선택하였습니다.
해방을 맞이하는 과정또한 극적이었습니다.
끝까지 수용소에 남아 있을 때 적십자 마크를 단 차 들어오고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사 대표가 나타나 여러분은 국제적십자사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말은 들은 순간 드디어 해방을 맞은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나치대원들이 트럭을 타고 와서 수용소를 비우라는 명령을 하고 마지막 남은 수감자들은 스위스로 가도록 되어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나치 대원들은 너무나 친절하였고 빨리 트럭에 타라고 하였기에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자와 친구는 마지막 그룹에 속에있었기에 마지막에 트럭에 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트럭에 타려고 하자 탑승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며 마지막 트럭에 태우지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저자는 놀라고 화가나고 실망해서 명단을 작성한 주치의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너무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노라고 변명하면서도 우리가 아직도 탈출을 기도 하는 줄 알았다고 말을 덧붙였습니다. 할 수 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다음 트럭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포 소리와 총소리가 나고 막사안으로 총알이 날아 들었습니다. 주치의가 뛰어들어 바닥에 엎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전선이 코앞에 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총격이 잦아들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수용소 앞에는 하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이 수용소에 들어왔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주가 지난 후 수용서에 그다지 멀지 않는 곳의 작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사진은 나치에 의해서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고 그 트럭을 탔던 친구들이 그 작은 수용소에서 불에 타 죽은 사진이었습니다.
2. 어떤 삶을 살아갈 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 넓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있고 헌신적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와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통해 이를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들 할 기회로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든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자신의 마음을 선택을 했으며
이를 통해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시련 속에서도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그 시련을 견딤으로써 그에 따르는 가치를 얻었습니다.
이는 비단 강제수용서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납니다.
자기가 며칠안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젊은 여자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운명이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타격을 가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그 전에 나는 제멋대로였고
정신적인 성취 같은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끔찍한 수용소의 생활을 하다 죽움을 맞이한 자신의 삶에 대해 그녀는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았습니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다.
시련을 주고 절망을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는 없습니다 .
그러나 절망과 시련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척박한 상황속에서 절망만을 바라 볼 것이가 아니면 이를 기회로 바라 볼 것인가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3.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냥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차역에서부터 수용소까지 길게 줄을 서서 행진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장례식 행렬같이 느끼거나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거부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되다 보면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인생을 포기한 수감자들이 나타내는 대부문의 현상은
옷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고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도 거부합니다. 간청과 주먹질과 위협도 소용없습니다.
그냥 누워서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싼 배설물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있으려고 만 합니다.
이런 수감자들은 48시간 안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게 됩니다.
수감자중 꽤 유명한 작곡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저자에게 와서 고백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 어제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것을 말하면 모두 대답해 준다고 하길래 수용소에서 언제 해방될 지 물어 보았더니 3월 30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주 희망차게 말 하였습니다. 그 말을 한 때가 3월이 막 시작될 때였습니다. 그러나 3월30일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3월31일 죽었습니다. 사망원인은 발진티푸스 였습니다. 그는 3월30일이 지나자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균에 대항하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수감자들이 1944년 성탄절에는 집에 갈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않자 성탄절부터 새해까지 많은 수감자들이 사망에 이르게 됬습니다. 이는 절망에 빠지자 몸의 저항력이 떨어진 이유였습니다.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가 자기들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습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을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도전을 무시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게 보냅니다 .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오히려 정신적으로 자기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자기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렇게 위대한 영적인 고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자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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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련을 완수하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 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 시련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시련이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련을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닌 시련 속에서 무엇인가를 성취 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시련이 가져다 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고
시련의 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임으로 해서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곧 시련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예일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들은 "베트남전 전쟁 포로 중 포로 생활의 엄청난 스트레스 고문과 질병, 독방 감금, 영양실조 등 에도 그것이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며 그런 면에서 이로운 점이 있다고 선언한 많은 사람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라고 애기했습니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지만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을 외울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련과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어떤삶을 선택할 것이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5. 종합 - 세가지 선택의 삶
이 책을 읽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절망의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세가지의 선택의 삶이 있었고
그 선택에 따라 의미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1. 포기의 삶
희망을 바라보지 못하고 포기를 선택하는 순간 삶은 무너집니다.
몸의 저항력이 급격이 무너져 몸속에 내제되어 있던 발진티부스균에 의해 하루만에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체 자신의 배설물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으며 48시간 안에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2. 돼지의 삶 -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삶입니다.
- 자신이 살기위해 또는 자신의 동료를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대신 죽음으로 몰아 넣습니다.
- 같은 포로이면서 나치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들을 짓밟고 죽이는 자가 됩니다.
3. 성자의 삶 - 오직 소수만이 성자의 반열에 합류하였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안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절망속에 낙담하였지만
그 절망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도전의지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삶을 의미있고 목적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수용소안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였습니다
시련과 죽음조차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비참하고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 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들어 갈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이러했습니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가능하면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 시킬 수 있다.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은 잠재적으로 의미가 있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라
인간이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련이 가져다 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켜라
시련을 완수하라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도 선택의 삶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냐는 본인의 자유입니다.
수용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것을 선택한 것처럼
인간은 희생과 긍정을 바라보기 보단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것을 먼저 바라보게 됩니다.
저 또한 긍정을 바라보기 보단 먼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이 앞서면서
이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책읽기를 통해 저의 인생을 바꾸어 보고자 결심하였고
맨 처음으로 이 책을 읽고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적으로 돌려 긍정의 마인드와
창조적인 생각으로 바꾸도록 시도하고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목적을 찾고 삶의 가치를 창출하고자 방향잡게 되었습니다.
지금 처한 나의상황에 무슨 의미가 있는 지를 생각하고
이 상황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지 삶의 의미를 찾고자 생각을 전환해야 합니다.
짜증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부정적인 생각과 절망이 아닌
긍정적이고 밝은 방향으로의 생각을 전환하고
오히려 창조적 변화를 일으켜 지금 주어진 상황속에서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내려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로 잡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방향이 지금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이 책을 옮긴 이시형 박사님도 6.25 전쟁이 가져다준 배고픔과 힘든 상황속에서 이 책을 단숨에 읽고나서 내가처한 상황은 이 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용기와 힘을 내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생각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만이 쟁취했던 인생에서의 삶의 값진 의미를 찾고
저마다의 가치있는 삶을 만들어 가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고를 전환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삶 더 발전된 삶으로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각자의 삶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삶의 큰 의미를 찾고
점점 더 가치있는 삶을 만들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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