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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기술 ​ 어느 노부부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입을 닫고, 할아버지에게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밥상을 차려서는 할아버지 앞에 내려놓고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식사를 마칠 때 쯤이면 또 말없이 숭늉을 떠다 놓기만 했습니다. ​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가 말 한마디를 안 하니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머니의 말문을 열게 할지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 ​ 잠시 뒤 할머니가 마른빨래를 개서 옷장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옷장 문을 닫고 나가자 옷장 문을 열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 여기저기 뒤지며 부산을 떨던 할아버지는 옷장 속에 있던 옷들을 하나둘씩 .. 2021. 9. 11.
들오리 이야기 ​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들오리 이야기'입니다. 지중해 해변에 살던 들오리 한 떼가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날아가다 어느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집 뜰에 집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모이를 먹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들오리는 그 모습을 너무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쪽 날개가 아파져 온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 잠시 쉬어 가려는 생각으로 홀로 집오리가 있는 집 뜰에 내려앉았습니다. 들오리는 집오리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신나게 놀며 지냈습니다. ​ 그런데 문득 이래서는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그동안 살이 쪄서 날 수가 없었습니다. ​ "에이 내.. 2021. 9. 9.
빵집 아저씨 ​ 어느 작은 마을에 빵집이 있었습니다. 착한 마음을 가진 빵집 주인은 마을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매일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침에 만든 빵을 바구니에 담아 문을 열어두고 한 덩어리씩 가져가게 하는 것입니다. ​ 그때마다 아이들이 몰려와 큰 빵을 먼저 집어가려고 경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중 한 아이는 언제나 끝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 남은 가장 작은 빵을 가져가며 '아저씨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 ​ 이날도 어김없이 아이는 마지막 빵을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눠 먹기 위해 빵을 쪼갰습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빵 안에 예쁜 금반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아이와 엄마는 실수로 주인아저씨가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다시 빵집으로.. 2021. 9. 7.
걱정이란 ​ 영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웃음에 대해 연구하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다. 그런데 장년이 되면 이 웃음은 하루 15~20번으로 감소한다.' ​ 어렸을 때 그렇게 기쁨 속에 잘 웃던 사람이 삶을 살아가며 기쁨을 상실한 채 웃음을 잃어가는 이유는 경험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때문이라고 한다. ​ 하지만 인간이 고민하고 염려하는 일들 가운데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 ​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란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 2021. 9. 5.
상처없는 독수리 ​ 온몸에 난 상처로 고민하고 아파하던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낭떠러지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 독수리는 여태껏 입은 자신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은 높이 날 수가 없다는 시름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 그 모습을 본 대장 독수리가 재빠르게 날아와 상처 난 독수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려고 하느냐?" ​ 그러자 아파하던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난 늘 상처만 입고 살아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대장 독수리는 갑자기 자신의 날개를 펼치더니 이야기했습니다. 그 날개에는 오래돼 보이는 많은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었습니다. ​ ​ "나의 몸을 한 번 .. 2021. 9. 1.
인생에서 행복할 때 ​ 역사상 위대한 여자 성악가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미국의 콘트랄토(여성 최저음 영역의 가수) 마리안 앤더슨. ​ 그녀는 가난한 가정 형편과 흑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925년 28세의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 주최 신인 콩쿠르에서 많은 경쟁자를 뒤로하고 1등으로 합격하였습니다. ​ 1935년 흑인 최초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섰고 이 공연을 본 거장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한 세기에 한 번 나올만한 소리를 가졌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 1939년 워싱턴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진행한 무료 야외 연주회에서는 7만 5천여 명의 청중이 몰릴 정도로 그녀는 많은이들에게 유명해졌습니다. ​ ​ 어느 날 그녀가 서는 무대마다 빠짐없이 참석해 취재했던 한 기자가 .. 2021. 8. 30.
리더십 이란 말을 타고 길을 가던 한 신사가 재목을 운반하기 위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군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편안히 앉아 구경만 하는 상사가 있었습니다. ​ 신사가 그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같이 일을 하지 않으십니까?" ​ 상사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졸병이 아니고 명령을 하는 상관이기 때문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신사는 말에서 내려 윗옷을 벗어 놓고 병사들과 함께 재목을 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 ​ 신사는 한참 동안 작업을 했고 많은 땀을 흘린 뒤에야 재목을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신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목재를 운반할 일이 있거든 총사령관을 부르십시오." ​ 그 신사가 유유히 자리를 떠나갈 때 즈.. 2021. 8. 28.
용서 ​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당시 9살 소녀였던 킴 푹은 동네 근처의 한 사찰에서 가족들과 함께 숨어 있다가 살상력이 큰 화염 무기 '네이팜 폭탄'의 폭격에 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 당시 온몸에 화상을 입은 킴 푹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거리를 내달렸고, 이 극적인 모습이 AP통신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히게 됐습니다. '네이팜 소녀'로 알려진 이 사진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1996년 워싱턴에서 열린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 킴 푹 씨가 초청돼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 연설에서 그녀는 "만약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라며 놀라운 발.. 2021. 8. 26.